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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십일조와 연보? 그래서 십일조는 안해도 되는 나쁜겁니까?

by 길목 2020. 3. 2.

글쎄... 그냥 단순하게 구약에서는 십일조가 나타나는데, 신약에서는 그런 단어가 나타나지 않고, 사도바울이 ‘연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은 희열을 느낄수도 있겠지만, 성경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문자적으로 보면 안된다.

 

교회가 돈 문제로 문제가 많이 생기니 그 흐름 타서 마구잡이로 비판하면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잘 먹히니 좋겠지만, 십일조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고 자기 희생이고 자기 내어놓음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독교의 엄청난 파워이다.

다만 이것을 교육하고 집행하는 교회와 그 안의 탐욕에 찌든 개인이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십일조를 그냥 율법처럼 내야 한다라고 정의한다면, 그 십일조를 처음에 명령하신 하나님의 의중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그냥 헌금, 돈을 내어 바치는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하나님이 신명기에서 ‘가난한자’를 염려해서 성도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또 매 3년마다 십일조를 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신 의미를 생략한 것이 된다.

 

문자적으로 헌금(돈을 바치다)과 연보(내어 보태다)의 의미가 다르다고 해서 구약의 아버지 하나님과 신약의 아들 예수님이 다른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농경사회에서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수확하는 기쁨 가운데 농부가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비를 내리고 햇빛을 내려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씨를 뿌리는 잠깐의 기간을 제외하면 하나님이 해주시는 분량이 더 엄청나고 그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면에서 수확을 거둔후 실질적으로 자기가 한 것보다는 하나님이 해주신 일이 더 많으니 그 열매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그래서 그것의 십분의 일을, 또 신명기 26 장에서 토지소산의 맏물을 바치라고 한 것은, 그냥 율법적으로 이방신에게 바치라고 명령하신 의미가 아니다. 그 열매를 자라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돈이 어디 쓸데가 있으신 분이신가? 그 열매를 드시는 분이신가? 그 사람의 마음을 신경쓰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열매 수확에 기여도가 있으시니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명령하시는 것에 대해 순종을 부탁하시는 부분이다.

 

토지를 쉬게 하라는 명령도 그런 의미에서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 하나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순종의 책임은 열매 수확에 대한 하나님의 권한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그 부분은 십일조를 통해서 명확하게 인정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통해서 구약에서 무엇을 했는가? 이웃을 챙기는 일이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지 어느 누구 개인의 배를 채우기 위하거나 어느 집단을 배부르게 하고 힘을 세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긋나지 않도록 연구하고 배워 전수하고 하나님 만나는 일을 어그러짐 없이 하기 위해 레위인과 제사장을 세우셨다. 그리고 그 일이 소중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하셨다. 이 구조를 서포트하기 위해 다른 모든 지파가 1/10을 내어서 그들의 생계를 이어주라고 하셨다. 십일조가 이런 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이방의 신들처럼 그냥 돈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런면에서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시다. 십일조나 연보나 사실 동일한 의미이다. 달라진 것은 한국교회가 문자주의적 경향을 이용해 성도를 겁박하고 돈에 매어달리게 만든 것이고 혹여나 돈을 내지 않으면 저주를 받지 않을까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을 소작농에게 돈을 걷는 지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생산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저 주어진 돈을 잘못 사용하고 자기 소유의 개념으로만 보고 엉뚱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람들도 그들을 떠받들었던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교회에 돈이 많아지자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엉뚱한데 쓴 교회의 중직자 그룹의 탐욕을 절제하지 못한 문제이다.

십일조는 아름다운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기본 개념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문자 하나로 시대적 개념에 편승해서 인기영합주의적인 발언은 안된다. 오히려 교회안에서 정직하고 정의롭게 발언하고 어그러진것을 바로잡는 참여가 필요할 뿐이다.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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