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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 칼럼

어쩌다 이중직? 이제는 이중직!

by 길목 2020. 3. 1.

이 글은 2018년 4월10일 장로회신학대학교 다톡 주최로 열린 '이중직 세미나'에 기고한 글입니다.

 

 

ㅁ 목사의 이중직?

목회자에게 이중직은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오직 목회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고, 못 먹고 못 입더라도 목회를 향한 일념으로 목양에만 올인해야 하는 사람이 목회자다. 그런 면에서 ‘이중직’이라는 말은, 세상 성도들에게 다분히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소위 ‘일하는 목회자’는 그리 매력이 없다. 그들이 성도들과 같다면 왜 성도들이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할까? 오히려 성도들이 그들보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선배가 아닌가?

 

시대가 달라졌다. 우선 교회와 목사가 가지는 위상이 달려졌다. 과거 신학교 경쟁률이 8:1 하던 때, 금융기관 전체 대출의 90%를 차지할정도로 엄청난 지원을 받아 동네마다 고층의 예배당이 세워지던 때가 지나가고 이제 신학교는 미달을 걱정하고, 교회는 파산 위기를 직감하며, 목사는 더 이상 신분 상승의 도구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아니게 됨을 인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목사, 이대로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그렇다면 목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는지를 묻는 ‘목사의 본질’을 고민하는 역발상의 도전이 유의미하게 된 것이다.

 

ㅁ 푸른 꿈 그리고 신학생

신대원 들어갈 때, 목회자의 사회성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한국 선교초기에 우리 신앙 선배들이 가졌던 ‘문자주의적 신앙’의 잔재들이 다양한 형태로 사회를 좀먹고 있음을 경험했다. 그래서 신대원 학우회를 기대하고 준비했다. 학우회를 시작하면서 내 주안점은 신학생들이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었고 그 길에 동행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학우에게는 신학책을 저술하게 했고, 노래를 잘하는 학우에게는 CCM 음반을 제작하고 기획사로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었다. 또 보다 많은 학우들이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안에서 자신의 사역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세상에서 잘 나가는 벤처 창립 전문가를 불러, 목회 영역에 접목시켜보기도 했다. 또 세상문화에 종속돼 뒤따라가지 않도록 미디어 분야에서도 세상과 보조를 같이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론을 들여와 이런 저런 시도를 시작했다.

 

ㅁ 사회참여를 요구하는 시대 상황

학우회를 하는 기간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신학생들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대한 보다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사회 참여, 그리고 신학적 해석과 사유를 요청해왔다. 더 이상 우리 바깥의 문제가 아닌 나와 우리 공동체 목회자들의 필수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우리들의 중심 문제가 되었다. 신학교 안에서, 교회 안에서 수련회를 즐기듯 그렇게 하하 호호 우리들의 언어만으로 살다 가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신학생들은 그리고 목회자들은 ‘신학함’을 결코 세상과 사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각인시켜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 참사 앞에서 다양한 각계 전문가들과 만남을 통해서 신학생들이 사회, 정치 문제를 주제로 책을 읽고 대화하며 토론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함을 느꼈고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 학생들이 사회문제로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인 ‘다톡(茶Talk)’이었다. 다톡을 통해서 학생들이 소그룹으로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를 열었다. 그리고 신학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 장신대가 한국 교회 안의 ‘목사’를 키우는 곳이지, 결코 하나님나라의 일꾼을 키우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졸업 후 전임 목회자가 되는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했지, 다른 곳에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는 목회자들은 마치 카스트 제도의 한 단계 등급 낮은 사명자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학우회를 했던 임원들과 C.S.I Bridge를 만들었다. ‘교회Chruch’와 ‘사회Society’의 ‘다리Bridge’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이었고, 교회는 하나님을 성경을 사회속에 전달해야 하고, 또 교회는 사회의 변화를 읽고 그 흐름에 뒤쳐지지 않도록 하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속에서 고전처럼 생각되고 죽은 문화처럼 생각되는 기독교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교회가 사회에 복음 컨텐츠를 전달하는 방법론이 필요한데, 그것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Informaition’라고 생각했다.

 

ㅁ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은 필수다

<버크민스터 풀러>의 말처럼 이제 곧 3일마다 인류의 지식이 2배가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자본을 소비한다. 그곳에서만 소용되는 컨텐츠가 자발적으로 생산되고 그곳을 통해서 가치가 형성되고 영향받는, 실로 놀라운 사회 발전상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아직도 선교초기의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상의 소통 방법론을 메인으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C.S.I Bridge는 첫 사업으로 신학교 졸업생들의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 중 교회안에서만 사역하지 않고 각 계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또는 사회에서 활동하다 목회자가 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사역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그리고 자신의 재능에도 맞는 사역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외국 유학을 통해 커피를 배워온 까페를 하는 임장원 목사를 비롯해, MBC 기자였다가 목사가 된 조정민 목사, 목사이면서 트롯트를 부르는 구자억 목사, 목사이면서 교회를 통해 사회와 연결된 세이비어교회 사역을 한국에서 시도하시는 김명현 목사 등등을 만나서 인터뷰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신대원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자신의 새로운 목회를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장신대에 제시했다. 핵심은, 학교안에서 배움의 현장에서 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졸업하기 전에 경험하게 해주어야했고, 실제 그것을 시도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있는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했다. 교회안에서 구약시대 제사장으로 서는게 아니라, 신약시대 제자들처럼 세상속으로 파고드는 사명이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제안서를 받아들고 그렇게 변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시대는 목회자의 변화를 필수로 요구하고 있고, 그 안에서 준비되지 못한 목회자는 쓰임받을 수 없게 될 것을 여러 지표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ㅁ 이중직, 실제적인 문제

문제는 두 가지 일이 한 가지 일보다 어렵다는데 있다. 이 문제가 ‘사업이 곧 선교’인지, ‘사업을 매개로 한 선교’인지의 갈래길의 중요한 논점과도 연결돼 있다. 일주일을 까페에서 보내고 있는 목사가 커피만 내리고 있고 예배하지 못한다면 그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헷갈릴 수 밖에 없다. 그가 설사 목사 신분이더라도,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지는 예배, 설교 등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사역’으로 보지 않는다. 다분히 전통적인 가치에 기반한 이해일 수 있지만, 아직 이중직의 문제 앞에 선 목회자들은 이 부분을 쉽게 해결하지 못한 채, 교회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예전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난 어떤 화가 목사님은, 그곳에서 선교하는 동안 자신의 전공이었고 좋아했던 그림을 한 번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거룩한 선교 사역 앞에 그림은 한낱 취미나 한가한 일이 되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뜻하지 자녀의 불행을 경험하면서 자녀의 말을 떠올려 다시 그림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그의 결심과 그림의 작품성은 놀라웠지만, 한국 교계와 성도들에게, 선교지에서 직접적인 복음을 전하는데 시간을 쏟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다 보내는 선교사는 ‘진짜 선교사’로 보이지 않는다는데 아쉬움이 있다.

 

복음은 커피 내리는 것이 아니며 그림 그리는 것이 아니며, 그 어느 중간 단계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생각이,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전문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과거 유명한 작사가이자 작곡가였던 CCM 가수이자 목사는, 자신의 노래에 대한 재능을 과감히 접고 설교 목사로 자리매김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을 심방하고 말씀을 전해주는 ‘목사’가 필요했지, 전문적인 재능을 가지고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이중직 목회자’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많은 경우 목회자들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한 정의가 쉽지 않고 이중직으로 인해 줄어드는 교회사역의 장점 때문에 만족감이 크지도 않다. 그래서 목회와 사업 두가지를 병행하며 사도바울의 선교학 기초 이론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을 가장 안전하게 생각하고, 사업은 목회를 위해 돈을 벌어주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안에서 있는 것이 우리의 목사로서의 사명을 채워주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고 본질적으로 목사로서의 사명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주님의 선교 명령을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일에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도보인다.

 

사회 곳곳에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 사명으로서의 사역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가장 신뢰도가 낮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국회에 성경의 가치와 기준으로 법을 만드는데 일조할 전문적이고 신실한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고, 회사의 사장으로서 하나님나라 만드는데 일조하도록 컨텐츠 자체를 바꾸는 사람도 나와야 한다. 또 우리 기독교는 세상의 미디어를 본떠서만 활용하고 있는데, 이제 그런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목회자 스스로 두 가지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시대적 사명을 이루는데 ‘이중직’은 어쩌면 하나님이 목회자들을 향해 새롭게 사명을 재정립해주시는 천명일 수 있다.

 

ㅁ 이중직의 사명 앞에 선 우리들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유언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행1:8) 그런데 성령을 받고난 이후에도 제자공동체는 예루살렘 안에서만 사역하고 있었다. ‘부흥’이라는 이름 앞에 그 교회 안의 숫자 불어나는 거룩한 사명만을 감당하고 있었다. 한 번에 삼 천명, 오 천명 세례자를 만들어 1만명 초대형 교회를 만드는 그 일에만 하나님의 뜻이 있는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뜻하지 않은 박해의 상황을 통해서 예수님이 가라고 했던 그곳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엄청난 선교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기록을 보게 된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8:1)”

 

이중직이라는 상황은 우리에게 박해와 같을 수 있다. 우리에겐 익숙치 않다. 정말 어쩌다 맞게 되는 이중직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시대를 복음화하라는 본질적인 메시지일수 있다. 부흥의 단맛에 취해 아직도 교회안에서만 머뭇거리는 우리들에게, 이제는 ‘사회라는 선교지‘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하는 간절한 당부의 말씀일 수 있다. 어쩌다 맞은 이중직의 상황! 이제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이중직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도전받을 때 시작하고, 학교에서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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